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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Diary#1_회고, 그리고 선택과 집중

블로그 글을 오랜만에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나의 기억들이 휘발되지 않고 기록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글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과정, 그리고 성찰과 반성이 담겼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솔직담백하게 써보고자 한다.
 
중학교 때로 돌아가 보자. (이제 26살이 되니, 초등학생 때는 정말 기억이 1도 안 난다. 초6 때 쉬는시간에 혼자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읽었던 사실 정도 밖에 말이다.)
중학교 때는 학교보다 학원가는 날이 더 재밌었다. 나랑 같은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친구들이 학교보단 학원에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선 정말 평범한, 조용한 학생이었다가 학원만 가면 말이 그렇게 많아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사고를 갔던 것 같다.
상산고에 갔더니 모두가 공부를 잘 한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래밍, 음악, 영어, 태권도 등 다른 분야에서도 특출한 애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겸손한 태도가 생긴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고등학교 때 목표는 서울대였다. 그리고 공대를 가고 싶었다. 의대는 사실 생각이 별로 없었다. 성적도 안 되고, 사람을 살리는 일보단 멋진 로켓을 만드는 것이 더 멋져보였으니깐. 서울대를 포기 못한 이유는, 우리나라 1등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근데 고등학교 1학년 내신을 받고, 수시로 서울대를 가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정시파이터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신공부를 소홀히 하겠다는 합리화였다. 그때부터였다. 한 번 보고 이해하지 못한 건 다시 보지 않고 넘겨버리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겨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정시파이터답게(?) 자연스럽게 고4 과정인 강남대성에 다녔다. 그땐 서울대라는 목표를 잡진 않았다. 목표하는 대학이 딱히 있진 않았다. 1년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성적에 맞는 대학에 가고자 했다. 오히려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점수도 잘 나왔던 것 아닐까 싶다.
연세대 신소재공학과에 갔다. 과는 그냥 강대 담임선생님이랑 상담하고, 진학사에서 내 점수가 아깝지 않을만한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화학을 다루는 과에 간 건 나의 크나큰 실수였다. 대학수업이 재미없었다. 대학생활도 재미없었다. 학과 사람들이랑은 어울리지 못하고, 그냥 한 두명이랑만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대다수는 재수 후 의대에 가서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동경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 걱정없이 나도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대에서 그 당시 변리사 학원 영상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짜고짜 부모님에게 반수선언을 했다.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2학기 때 나는 송도를 떠나, 대치에 있는 시대인재로 짐을 옮겼다. 한 학기 동안 죽어라 공부했다. 재수 때 이미 개념을 닦아놓아서, 문제만 주구장창 풀었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세 번째 수능 날은 정말 운이 좋게 인생 처음으로 수학도 100점을 맞았다. 그래서 나는 의대를 갔다.
예과 생활을 재밌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2020년에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오래갔다. 나는 예과 2년을 모두 비대면 수업을 한, 비운의 코로나 학번이 졸지에 되어버렸다. 나한테 기억나는 건 롤 플레와 롤체 다이아 찍기...?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다. 집에만 거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험생활을 지독하게 했으니 휴식기를 갖자는 마인드였다. 다시 돌아갔어도 쉬지 않았을까? 후회는 없다.
본과 1학년이 되었다. 내가 재미없어 하는 화학과 생물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생각해보니 난 물리와 지구과학을 좋아했는데 왜 의대에 왔는지 모르겠다. 1학기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2학기 때에는 병리학, 약리학 같은 과목들이 그나마 재밌었고 성적도 괜찮게 나왔다. 외우면 되니깐...? 그때부터 나는 이해력이 좋진 않지만 암기는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해 못하는 지식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갔다. 고등학교 때의 습관이 다시 발현된 것이다.
본과 2학년 때는 임상을 블록제 형태로 배웠다. 별 생각 없이 매 블록의 시험들을 넘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 와서 뭐하고 있는거지? 주구장창 수업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다른 애들처럼 성적을 잘 받자라는 목적도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뭘 따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지내면 살아있는 시체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뭐라도 하자고 생각했다. 무색무취인 나와 대비되는,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여자친구의 영향도 정말 컸던 것 같다.
병리학 교수님한테 콜드메일을 보내 학회에 같이 따라가도 보고, 응급의학 블록 때 시험보다 기업분석경진대회를 더 열심히 준비해 보고, 지도교수님께 학교 소식지 기사도 직접 기획해보겠다고 해서 인터뷰도 해 봤다. 밴드 동아리에서 5곡의 기타곡을 연습하기 위해 시험기간 때 틈틈히 기타를 잡았다. 겨울방학 땐 예과 친구들을 데리고 겨울방학 때 의사 선배님에게 멘토링도 직접 가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담은 글로 학교 진로수기 상을 타보기도 했다.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뇌 빼고 행동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본과 3학년 땐 의료대란이 닥쳐왔다. 학생회는 아니지만 TF 일을 초반에 많이 도와주었다. 동아리도 만들었다. 독서모임과 코딩모임을 동시에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네트워킹에서 만난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정주영창업경진대회도 나가보았다. 대회가 끝난 후에는, 투비닥터에도 면접을 봐서 편집팀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세미나도 많이 들으러 갔다.
 
뭘 많이 하긴 했다. 근데 어느순간부터 목표를 위한 노력이 아닌, 노력 그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내가 이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은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이다. 나는 다양한 분야에 찍먹해서 누가 화두를 던지면, 내가 아는 용어 몇 개를 내뱉으며 답을 할 순 있지만 대화가 3번 이상만 오가도 말문이 턱 막혔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이대로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리지 않고 해왔다면, 이젠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다 이제는. 어느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는 나름대로 그 동안의 무지성 경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대강 정해 놓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이다. 

P.S.
이 장미는 로즈데이 때 여자친구가 준 꽃이다. 갈비를 먹다가 갑자기 여자친구가 나가더니 깜짝 선물을 해줬다. 내가 본 꽃 중에 가장 예쁘다. 페트병에 물을 담고 꽂았더니 시간이 갈수록 환하게 피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내 생각을 하며 서프라이즈를 해준 여자친구의 마음이 가장 예쁘다.